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DELIVER US FROM EVIL, 2020)
코로나19가 발발한 후로 영화관에 가지 않으니 어쩐지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영화를 봤다. 이번에 보게 된 작품은 <황해>, <추격자> 등 다양한 영화를 각색한 감독 황원찬의 새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 화려한 액션과 연출은 마음에 들었지만 뻔한 스토리가 아쉬웠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줄거리
전직 국정원 요원이었던 인남(황정민)은 조직이 해체된 후 일본으로 도피하여 살인청부업자로 살고있다.
킬러 생활에 지친 인남은 마지막으로 청부살인 미션을 완수한다. 야쿠자 보스인 고레다(토요하라 코스케)를 죽인 후, 이 삶을 청산하며 조용히 살 수 있는 파나마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러던 중 인남은 전 여자친구인 영주(최희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8년 전, 인남이 목숨을 위협받고 일본으로 도피하면서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었다. 그 후 영주는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이를 지키려고 하는 영주를 인남의 상사 춘성(송영창)이 해외로 도피시켜준다. 영주는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딸 유민(박소이)과 둘이서 살고 있었는데, 유민이 하교 중에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딸아이를 찾으러 가다 장기적출 및 살인을 당한다.
전여자친구의 죽음과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게된 인남은 유민을 찾으러 태국 방콕으로 떠난다. 한편, 자신의 형이 인남에게 암살되었다는 걸 알게된 인간 백정 레이(이정재)는 무자비한 복수를 위해 인남을 추격한다. 과연 인남은 레이의 추격을 피해 무사히 유민을 구할 수 있을까?
후기
왜 제목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일까 의아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딸을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인남의 마음을 반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인남이 딸을 위해 '다만 (내 딸을) 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느낌으로 제목을 지은건가 싶었다. 그래서 악에서 구해지는 대상이 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감독이 이 영화가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 누군가를 구하면서 본인도 구원을 얻게되는 이야기고,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찾다보니 주기도문 마지막 구절에 착안해 결정했다고 설명한 걸 보았다. 감독 입장에서는 구원받은 대상이 유민이 아닌 인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좀 놀랐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삶의 목표를 다 잃어버린듯 지쳐보이는 인남이었는데 딸의 존재를 알게된 후 딸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눈빛을 빛냈으니. 유민도 인남에 의해 구해졌지만, 어쩌면 정말 구원받은 것은 삶을 살아갈 이유가 생긴 인남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행동하는 모든 배우들의 눈빛과 연기는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액션씬을 보면 내 오금이 저려왔고 (이거 19세 연령가 영화인줄 알았는데 영화 다 보고 찾아보니 15세여서 놀람... 잔인하잖아요ㅠㅠㅠㅠ) 박정민의 파격 변신은 충격이었다. 국내 남자배우가 트렌스젠더 연기하는 건 생소했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박정민'이다 생각했다. 어느 배역이든 잘 녹아든다.
화려한 액션씬과 배우들의 연기에 눈은 즐거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가 부실한게 느껴져 아쉬웠다. 영화 전체 내용을 요약하자면 결국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남자주인공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인데, <아저씨>, <레옹> 등 다른 영화가 겹쳐보이기도 했고 진부한 클리셰 때문에 다음 장면이 예측이 되어 긴장감이 풀려버리기도 했다. 보통 좋은 영화를 보면 여운이 오래가기 마련인데 그런게 없었다. 마음에 꽂히거나 기억나는 명대사도 없었다. 내 영화 취향자체가 액션과는 거리가 멀어 그럴 수도 있다. 난 휴먼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지 이 영화가 액션씬은 되게 공들여 놓고 사람에 관한 얘기는 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레이가 형과 어느 정도의 관계였길래 형의 죽음에 눈깔이 돌아버린건지, 그냥 레이가 미친놈이어서 그런건지, 레이는 인남이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갑자기 나타나는지 등...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기가 어렵고 캐릭터의 컨셉만 남아있는 느낌이 강했다.
상영시간이 108분으로 짧은데 시간을 길게 늘려 스토리의 개연성과 깊이를 더 보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 <다만악>에 대한 후기를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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