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Exit, 2019)
어제 사촌동생이 집에 와서 뭘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다가, 최근 영화 엑시트가 재밌다고 하던게 기억이 나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12세 관람가 영화인 만큼 가족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아주 짧게 욕이 나오긴 하지만 후딱 지나가는 정도라서 괜찮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심오한 작품은 전혀 아니니 가볍게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줄거리
대학교 졸업 후 몇 년째 취업 실패로 가족들 눈칫밥 먹으며 사는 용남(조정석)과 연회장 직원으로 취업했지만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점장(강기영)때문에 고생인 의주(윤아)의 삶은 재난과도 같다. 그러던 중, 대학교 산악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용남과 의주는 용남의 어머니(고두심)의 칠순 잔치에서 만나게 된다. 어색한 재회도 잠시, 도심 전체가 유독가스로 뒤덮인 진짜 재난 상황을 마주하게 되어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산악 동아리 시절 쌓아 뒀던 모든 체력과 스킬을 동원해 재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용남과 의주!
과연 둘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후기
사실 영화 내용은 별거 없다. '누군가의 유독가스 살포 후, 두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살아남는다'가 내용의 전부다. 교훈을 얻어낼 수 있는 영화는 아니고 생각없이 보면 좋은 영화다. 아, 얻은 교훈 하나 있다. '평상시에 체력을 키워놓자.'
정말 영화같은 영화다. 전문 산악인들도 하기 힘든 것을 아마추어 둘이서 목숨 걸고 건물을 타고 오르고, 지치는 것 없이 계속해서 건물 옥상 사이를 뛰어다니고 넘고 하는게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체력 거지인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런 재난 상황에 있었으면 바로 죽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해졌다ㅋㅋㅋㅋ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클라이밍을 배우고 싶어지더라. 실제로도 엑시트 상영 이후 많은 이들이 클라이밍을 시도해본다고 하니,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초 체력을 키움과 동시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생각하게 만드는 운동이니, 순발력을 키우고 위기 상황에 대처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재난 상황에서 어떤 위기라도 결국 주인공들이 극복해내는, 비현실적인 영화는 몇몇 이들에게는 뻔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조금은 그랬다. 그리고 기존의 재난 영화와는 달라서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보통 우리는 '재난'하면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난영화' 역시 심각하거나 슬픈, 혹은 감동적인 장면으로 주로 전개된다. 반면 엑시트는 재난영화지만 코믹하다. 감동적인 요소도 존재하지만, 확실히 기존의 재난영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조금은 판타지스럽게도 느껴진다. 같이 보던 엄마는 영화가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서인지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에 드셨고, 반대로 내 동생은 주인공들의 위기 상황때 마다 심장이 너무 쫄려서 죽는줄 알았단다. 나는 반반. 전개가 갑작스럽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새로웠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부분도 존재했다.
시청포인트 1. 주인공들의 솔직함, 인간다움
다른 사람들을 다 대피시켜놓은 후의 용남과 의주는 영화의 영웅들처럼 의연하지 못하다. 나도 살고싶다며 울상 짓기도 하고 겁먹은 아이처럼 속에 있었던 말을 옹알이로 내뱉다 울어버리기도 한다. 솔직하게 두려움과 슬픔을 표현하는 윤아와 조정석의 표정 연기가 압권! 그 모습이 귀엽고 코믹하게 연출이 되면서도 저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저랬을 것 같아 공감이 되고 좀 슬프고 그랬다. 특히 윤아가 울먹이는데 너무 귀여워섴ㅋㅋㅋㅋㅋㅋ 주인공들의 조금은 찌질한 모습들이 더 사람답게 보이게 하고, 그래서 더 정이 갔다.
시청포인트 2. 한국적인 요소 多
엑시트가 현재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중 최고의 예매율을 보이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잘 맞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재난 영화와 달리 '확실히 이건 한국 재난영화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배경 때문이다.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피해 주인공들이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는데, 건물의 간판이 주인공들을 도와준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건물에 붙어있는 수많은 빛나는 간판들. 사실 나는 우리나라 건물에 간판이 많은 것이 전에는 미관상 별로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니 이제 간판이 우리나라 모습의 한 특징으로 자리가 잡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판에 대한 거부감을 좀 낮춰주었달깤ㅋㅋㅋㅋㅋ
소품에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난다. 헬기에게 구조신호를 더 크게 보내기 위해서 가족이 노래방 기계를 가져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난 그게 왠지 웃겼다. 흥의 민족에게 노래방 기계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것이잖아요... 마이크에 대고 "사람 살려~" 하고 구호를 크게 외치는데 빵 터졌다. 보습학원에 갇혀있던 아이들은 사교육에 갇힌 우리나라 학생들을 대변해주는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취업 못한 용남이도 우리나라의 취준생들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취준생인 나는 그래도 용남이가 건강하고 암벽이라도 잘 타서 부럽다고 생각했다. 흑.
시청포인트 3. 한 명이 아닌 함께, 서로
엑시트는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씩씩하게 서로를 돕고 함께 위기를 헤쳐나간다. 함께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장면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을 도와주기 위해 시민들이 수 많은 드론을 날려보내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갑자기 4차산업혁명 생각나구욬ㅋㅋㅋㅋ 누구 한 명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협력이 빛을 발하는게 영화의 감동 포인트.
시청포인트 4. 진득한 로맨스없이 깔끔한 영화
우리나라 영화는 어느 장르든 로맨스를 빼긴 어려운 것 같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남녀 주인공들에게 질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엑시트는 로맨틱한 장면없이 깔끔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끝에 와서야 로맨스의 시작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영화 전체 전개를 보면 서로 살려고 바쁘닼ㅋㅋㅋㅋ 로맨스 빼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도우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사람들이 엑시트를 볼 때 편안하게 느끼는 요소 중 하나인 듯 하다.
시청포인트 5. 심장 쫄깃해지는 고층에서의 액션
무더위를 날리기 위해서 여름에는 공포영화를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새가슴이어서 공포영화는 못 보는데, 심장은 쫄깃해지고 싶으면 엑스트를 보기를 추천한다. 주인공이 떨어지진 않을까, 유독가스가 그들을 덮치진 않을까 계속해서 조마조마하게 된다. 내 앞에 앉아서 보던 학생 역시 몰입이 됐는지 위험한 상황에는 자기도 모르게 헉! 하고 소리를 자꾸 내는데 그게 웃기면서도 공감이 됐다. 내 동생은 영화를 다 보고나서 유독 피곤해했는데, 너무 몰입이 되서 손이 막 저리고 온 신경을 다 써서 그렇단다. 가슴 쫄깃하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엑시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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