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가이드 알바 후기
17년도 2월에 했던 국내여행가이드 알바.
공고를 보고 이 알바를 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1. 일급이 10만원 정도여서
2. 여행과 관련된 이색 알바여서
3.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서
였는데... 왜 10만원 받는지 알겠더라. 사실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극한직업이었다.
이 일은 주말마다 하는 거였고, 나는 실습생이라 토요일에만 나가면 됐었다. 실습기간은 한 달이었다. 네 번의 실습을 참여해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배운 후에 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세 번만 나가고 일을 그만둬서 돈을 받진 못했다. 그만둔 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짤렸다. 나는 사실 짤리길 바랬고, 내 상사가 그걸 알아줬다. 내 거지같은 체력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이 알바를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1. 새벽부터 돌아다니고 움직여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사람
2. 자가용을 운전할 줄 알거나, 집결지에 가까이 사는 사람
3. 말 잘하는 인싸력을 갖고 있는 사람
4. 주말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싶은, 가만히 있는게 힘든 사람
5. 여러 가지 변수에도 순발력있게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
나 같이 비실하거나, 자가용 운전 못하거나,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이 알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전 기억을 더듬어서 써내려가보도록 하겠다.
1. 면접
지원서를 넣은 후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면접날, 알려준 위치대로 갔는데 웬 허름하고 낡은 건물이 나타났다. 들어가는 데 분위기가 휑하고 어두워서 잔뜩 겁을 먹었다.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매우 작았고 건물 외부처럼 내부도 허름했다.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나갈까 싶었지만 곧 직원분이 나오셨다. 직원분은 매우 친절하게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직원 덕분에 긴장이 풀린 나는 편하게 면접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좀 걱정스러운 부분이 몇 개 있었지만 생각과 겁대가리가 동시에 없었던 당시의 어린 나는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2. 실습 준비
결국엔 면접을 봤다고, 이 알바를 할거라고 가족들에게 얘기하자 엄마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위험하게 왜 새벽부터 나가야 하는 일을 하느냐는 거다. 아빠는 걱정했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이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빠는 내 고집에 포기하고 '그래, 한번 해봐라' 라고 하셨다. 잠깐동안 한 일이지만 그래도 배운게 있어 이 일을 했던 걸 후회하진 않지만 왜 엄마, 아빠가 그렇게 만류했는지는 이젠 너무 잘 알겠다... 엄마, 아빠 미안....
직원 분이 내가 실습생이긴 하지만 가이드분들 중 여행지에 대해 손님들 앞에서 설명을 해보라고 시키는 분들이 있어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나는 내가 갈 여행지에 대해 미리 조사를 했고, 손님들 앞에서 얘기할 걸 대비해 대본을 핸드폰에 적어놨다. 버스 중간에 틈틈이 볼 수 있도록! 나는 당시 학교 방학이었지만 토익스피킹 학원도 다니고 해서 굉장히 바빴는데, 조사자료 준비하고 외우는 것도 일이었다... 특히 선임 가이드분과 사람들 앞에서 얘기해야 하는 내용이라서 어설픈 건 그렇다 쳐도 혹시나 잘못된 내용으로 지적받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담이 장난 아니었다.
3. 새벽 출근
새벽 다섯시까지 집결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새벽 세시 쯤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네시 쯤에 집에서 출발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짓이었다. 모두 자는 새벽에 혼자 외출이라니. 그리고 남자들에게도 위험한 새벽에 여자 혼자 나와 택시를 잡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간땡이가 부은 거 같다. 집결지가 집과 가까운 곳도 아니라 택시비가 꽤 들었다. 첫 날인데 벌써 현타가 왔다. 평상시라면 자고 있을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택시비까지 내고 있다... 돈 벌려고 하는건데 이러다가 택시비로 다 빠질 것 같았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나 혼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무섭기도 하고 겨울이라 춥기도 해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따뜻한 음료를 사서 홀짝이며 밖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그 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이드분들일 것 같아 편의점을 나와 다시 집결지로 향해 갔다. 낯 가리고 숫기 없는 내가 쭈뼛쭈뼛 그들에게 다가가서 혹시 가이드분들 맞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그들과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 선임 가이드분이 왔다. 가이드분에게 손님들 연락 주는 것부터 해서 좌석 체크하는 거, 버스 내부와 외부 체크하는 것, 기사님한테 인사 드리는 것 등 여러가지 설명을 들었다. 수첩과 펜을 챙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이라 하나도 감이 안 잡히는데 할 건 산더미처럼 많았다.
4. 버스타고 출발
곳곳에 정차해 사람들을 태웠다. 인사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체크 해야하고 이거 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인사도 처음엔 낯가린다고 크게 못했다. 가이드분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긴 한데 가이드분들은 대부분 활기차고 자연스럽게, 어쩌면 조금은 능글맞게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배워야겠다 싶어서 갈수록 점점 활기차게 손님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손님들은 연령대가 다양했지만 중장년층들이 조금 더 많은 편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설레는지 다들 안색이 좋았다. 가이드분들도 나보다 나이가 다들 많으신데 얼굴에 푸석함이 없이 말짱하고 눈빛도 또랑한게 너무 신기했다. 분명 이분들도 새벽에 일어난 거 맞는데... 나만 정신 가출한 것 같았다ㅎ
손님들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에서 가이드분이 버스 앞의 한 가운데에 서서 안전규칙이나 여행 시 주의사항을 설명해주셨다. 덜컹덜컹 거리는 버스에서도 중심을 잘 잡으셨다. 종잇장같은 나라면 이리 펄럭, 저리 펄럭했을텐데... 내가 서서 멘트 칠때는 중심 잡는다고 안간힘을 썼었는데 내 선임 가이드분들은 진짜 다들 체력 갑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다들 이 일을 오래 일하실 수 있는 거였고.
그래, 이 정도까지는 아직 할 만했다. 하지만 정말 이건 못하겠다 싶은게 뭐였냐면 버스 이동 중에 자면 안 된다는 거. 오래 같이 일한 기사님들도 있지만 가끔 새로 오신 기사님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잘 가고 있는지 중간중간에 확인해야했다. 나는 운전면허를 아직 따지 않아서 고속도로 이름이나 이런게 익숙하지가 않았는데, 선임은 그걸 알아야 나중에 기사분이 여기로 가는게 맞는지 물어볼 때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지금 어디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지 알기 위해서 맵 어플과 고속도로 어플을 깔아야 했다. 버스 내에선 와이파이가 안 돼서 계속 데이터를 써야 했는데 여기서 또 비용이....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낮은 요금제를 쓰고 있었고 이 어플들을 버스 이동하는 몇 시간동안 쓰니 평소보다 데이터가 많이 부족해서 요금이 폭탄 맞았던 기억이 난닼ㅋㅋㅋ
그리고 손님들이 혹시나 뭘 물어보거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상상황에 대비해서 자면 안 된다는 거다. 안 그래도 잠 많은 사람인데 이동 수단에서는 유독 잠이 밀려오는 내가, 두 시간 잔 상태에서 자지 않으려고 버티는게 진짜 고역이었다. 초반엔 여행지 설명할 거 복습하면서 버텨도 결국 감기는 눈을 못 참고 깊게 잠 들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걸로 많이 꾸중들었다. 여행은 그냥 여행으로 즐길 때가 좋은 거구나... 가이드는 확실히 일이었다....
5. 휴게소
휴게소에서 내리기전에 탑승 시간을 알리는 공지를 하고, 사람들 나가는거 다 체크하고 나서야 화장실을 가든 버스에 있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어느 날은 외부인들은 잘 모르고 출입도 하지 않는 휴게소 안의 조그마한 기사식당에 기사님이랑 가이드분이랑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신기했다. 꿀맛. 출발시간 전에 미리 버스에 도착해서 손님들 다 왔는지 파악하면 기사님에게 출발 해달라고 부탁한다.
6. 여행지 설명
여행지에 다 와가면 여행지에 대해 설명하러 또 일어서야 한다. 미리 버스에서 여행지에 관해 설명을 해준 후,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손님들 사진을 찍어줘야한다. 여행지에서 손님들이 물어보는 게 있으면 그때 대답하고. 난 이 여행지 설명하는 게 진짜 긴장됐다. 혹시나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내가 기껏 외웠는데 내용을 까먹기도 해서였다. 어느 날은 나름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소통한답시고 "여러분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물었는데 선임에게 혼쭐이났다. 손님한테 질문하는 식으로 하지 말라구... 힝.
7. 여행지 도착
도착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빠르게 걸어야 한다. 손님들보고는 천천히 따라 올라오라고 한 후, 가이드는 입장표를 끊는 곳에 빠르게 가 회사 측에서 미리 결제해놓은 표를 얼른 받고, 표 수가 정확한지 세어봐야 했다. 또한 여행지에 도착하면 화장실이 있는 곳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화장실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얘기할 수 있어야 했다. 정말 한 두가지 신경 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니 막 따라다니고 한다고 지치는지 몰랐는데, 사방 팔방 다 뛰어다니다 보니 점점 체력의 한계가 왔다.
가이드분들마다 스타일이 조금 달랐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손님들과 동행하는 열정 가이드분들도 있는 반면, 초반에는 조금 같이 있다가 후에는 그 여행지에 대해서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혼자서 돌아다니시는 분들도 있었다. 실습 세번째 날에 만난 내 선임 가이드분은 후자였다. 선임은 손님들이 여행지를 즐길동안 완전 기력이 바닥이 난 나를 카페에 데려왔다. 그리고 조금 꾸짖으셨다. 화를 낸건 아니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래서 앞으로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멘붕이 왔다. 마음은 '그만 하고 싶어요.' 인데, 아직 이 분과의 여행이 마무리 되지 않았기에 그 뒤에 벌어질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다. 그래서 누가 들어도 조그맣고 자신없는 목소리로 '해보겠습니다.' 라고 했다. 선임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내가 가이드일이 안 맞고 이 일을 힘들어 한다는 걸. 그래서 앞으로 가이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은 해주셨지만, 기대는 없는 듯한 형식적인 말투였다. 나도 형식적으로 설명을 들었다.
8. 여행의 끝
사람들 모두가 탑승했는지 수를 세는 것은 필수. 모두가 탑승한 게 확인이 되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 하차하는 곳에 다와가면 마무리 멘트를 하고 가시는 손님들을 따뜻한 인사로 배웅한다. 손님들이 내리는 마지막 정류장에서 가이드분들도 내리고 해산을 한다. 교통수단으로 타면 그곳에서 내 집까지와의 거리는 한 시간. 첫째 날은 마지막 정류장에서 교통수단을 타고 혼자서 집으로 갔지만, 둘째 날은 운전을 하실 줄 아는 가이드분이 나를 포함한 여러 가이드분들을 태워다주셨다. 마지막 날은 손님들을 태우고 버스가 가는 길에 나를 우리 집에 그나마 가까운 지하철역에다 내려주셔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마지막 날은 왜 이렇게 서럽던지. 몸도 힘든데 혼이 나서 서러운 게 가장 컸지만 열심히 사는 가이드분들과 내가 비교가 되서 주눅이 든 것도 있었다. 체력적으로도 부족하고, 나름 노력은 했지만 말도 잘 못하고 외향적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 동기에게 카톡이 와서 대화를 나누는데, 내가 알바하는 걸 듣고 동기가 고생했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때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울면서 지하철 타고 그랬다ㅋㅋㅋㅋㅋㅋ 진짜 어릴 때나 지금이나 자존심은 센데 겁도 많고 예민하고 눈물 많고... 총체적 난국ㅎ
여행을 다녀온 몇일 뒤, 회사 측에서 실습생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다. 실습생 신분에서 못 벗어나서 돈은 못 받았지만 그 돈으로 여행 다녀온 셈 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떨어진게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알바를 하고 느낀 점
1. 낯 가려도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것이 좋다.
2. 선임은 신입에게 완벽을 바라는게 아니라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원한다. 그 노력과 열정적인 자세가 예뻐보이는 것.
3. 나는 새벽에 나가는 일이나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일은 맞지 않는다. 어쨌든 체력 좀 키우자.
4. 돈을 많이 받는 일은 이유가 다 있다.
5.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 알바의 장점
1. 다양한, 부지런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꿀잼)
2. 우리나라의 좋은 여행지들을 많이 알 수 있고, 우라나라의 역사에 대해 잘 알게된다.
3. 이 알바를 오랫동안 해내면 멘탈이 단단해질 수 있다.
이 알바의 단점
1. 체력을 많이 요한다.
2. 나는 겪지 않았지만 종종 하지말라는 짓 다하거나 말로 상처주는 진상 손님있다.
3. 새벽에 나가야 해서 당일날 잠을 많이 못 잔다. 두통잼.
4. 나같이 자가용 없는 사람들은 새벽에 집결지까지 가는 택시비가 든다.
(한번 가는데 집이 먼 나는 15000원 정도 들었다...ㅎ 돈을 벌려고 하는건지 쓸려고 하는건지 원)
쉽지 않은 극한 알바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운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도 다신 안 한다. 알바 후기 끝!
'리뷰 > 일상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니 수면마취하고 뽑은 후기 (2) | 2019.10.09 |
---|---|
보건소에서 심폐소생술 교육 받은 후기 (4) | 2019.09.21 |
교내 현장실습 신청 및 면접 후기 (0) | 2019.08.23 |
부라보 수박맛 후기 (0) | 2019.07.31 |
세계 맥주 할인점에서 인생 맥주 발견한 후기 (3) | 201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