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전체 줄거리 및 후기 + 1회~4회 명대사
요즘 자고 일어나면 온 몸에 힘이 없다.
겨우 몸을 일으키면 내 어깨에 누가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혼자서 어깨를 주물러 보려는데, 주무를 힘도 없어 손이 얼마 안 있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속이 답답하다가, 화도 나다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어 울적해지다가, 모든게 다 귀찮아져서 멍 때리다가...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속이 뒤죽박죽이지만 사적인 일이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듯이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만났다.
*스포일러 주의!!
줄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것들로 가득한 삶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 그들은 해방을 향해 어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성과 사랑에 소외된 기정은 아무나라도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초라해지는 창희는 자신이 조금 덜 볼품없기를 바라고, 인간 관계가 어렵고 힘든 미정은 한 사람을 추앙하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추앙받기로 해본다.
박해영 작가는 아싸 삼남매의 해방을 단번에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대리만족을 선사하진 않지만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삶의 과정을 그려내어 우리를 위로한다. 주인공들이 일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어제보다 마음에 드는 오늘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현실적이고 뭉클하다. 그래서 극적인 변화와 시원한 '해방'을 기대했다면 마지막회가 조금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잔잔한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해방'을 꿈꿔본다. 그래,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좋아지진 않겠지만 마음을 좀 더 가볍게 가지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더 숨통 트일 날이 오겠지.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추앙하고 누군가에게 추앙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독특하고 섬세한 대사와 전개, 그리고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들의 개성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처음엔 뭐지 싶은데 다 보고나면 다시 한 번 더 보고싶어지는 드라마다.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 이대로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워서 기억에 남는 대사들을 꺼내어 곱씹어보려고 한다.
1화 명대사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지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에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간에 힘들었던 것보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 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죽을 것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 낸 거에요. 언젠가를 만나게 될 당신. 적어도 당신한테 난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겠죠.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만나지도 않은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미정이 무채색 인생을 견뎌내는 법. 이 대사듣고 얼마나 지치고 고독하면 없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버틸까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다.
“난 조선시대가 맞았어. '오늘부터 이 사람이 네 짝이다' 그럼 '예, 열렬히 사랑하겠습니다'
그러고 그냥 살아도 잘 살았을 것 같애. 사람 고르고 선택하는 이 시대가 난 더 버거워.”
........
“야, 미물도 알아. 짝 없이 혼자 겨울을 나는게 어떤건지. 쟤도 저렇게 구슬프게 우는데.
겨울이 온다고, 춥다고, 혼자 두지 말라고 저렇게 우는데... 우리도 하자. 하자, 하자고!
난 할래. 할 거야. 아무나 사랑할거야, 난.”
“진짜 아무나?”
“진짜 아무나. 왜 아무나 사랑 못해? 여태 가리고 가려서 이 모양 이 꼴이니?
고르고 고르다가 똥 고른다고, 똥도 못 골라보고. 아무나 사랑해도 돼. 아무나 사랑할 거야."
산포 사람들과 얘기나누는 기정의 대사. 금사빠 기정은 주인을 지키는 진돗개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본인을 희생해서까지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이 많은 여자다. 나는 희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본 적도 없는 이에게 시집가야하는 옛날보다 선택권이 있어 알아갈 수 있는 지금의 시대가 더 안전하고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솔직히 피곤한 일인건 맞는 것 같다. 내 종착역을 찾기 위해서 고민하다 시간 다 가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순수한 사랑은 어려워진다. 기정은 다 내려놓고 그냥 '사랑'을 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에 달린 일이니.
2화 명대사
“왜 매일 술 마셔요?”
“아니면 뭐 해?”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에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2화에 명대사가 많지만 그 중 하나만 뽑으라 하면 단연코 미정의 '날 추앙해요.'
드라마에 이런 단어가 나올줄은. 낯설어서 충격적이었다. 구씨처럼 핸드폰으로 단어 뜻 검색해보고 이해했다ㅋㅋㅋㅋㅋㅋ 미정은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많다. 전남자친구한테 돈도 떼였고,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상사와 동료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녀는 날선 시선과 말에 지쳤다. 공허한 미정은 한 명이라도 자신을 우러러보길 원한다.
이성 간의 사랑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의 추앙. 작가는 미정의 입을 빌려 우리의 얘기를 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 존중받고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한 명이라도 날 진심으로 추앙해준다면 인생이 조금 살만할테니.
3화 명대사
"내가 봤어, 걔 눈빛. 이놈 별거 없구나 하는 그 재수 없는 오만 정 떨어지는 눈빛.
여자들 만나다 보면 보이는 눈빛 있어. 이놈 별거 없구나. 이제 어떻게 헤어져야 될까?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어떻게 족칠까? 처음엔 나도 무지 기어. 그래, 나 별거 없는 놈인 거 안다.
근데 나 만나면 재미는 있다. 심심하지는 않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도 뭐 안 되면 그럼 별 수 있어?
끝내자는데 끝내는 수 밖에 없지. 그때부터 죽어라 싸우는거야. 내가 영화를 혼자 봐서 헤어진 걸로 만들고,
걔가 새벽에 딴 놈이랑 톡해서 헤어진 걸로 만들어야 돼. 절대로 내가 별 볼일 없는 인간인 거
그게 들통나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나도 알아. 걔가 쥘 수 있는 패 중에 내가 최고의 패는 아니라는거.
더 좋은 패가 있겠다 싶겠지. 나도 알아.
창희의 대사는 내 마음을 푹 찔렀다.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날들과 반대로 내가 상대를 별 볼일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날들이 떠올랐다. 솔직해지자. 단 한번도 누구를 조금이라도 무시한 적 없이 늘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신일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인간이다. 내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면서 타인을 내 기준에 채우려하고 평가하는 못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으니까. 그런 못난 마음을 인지한 순간마다 내 자신에게 싫증을 느꼈는데 이 대사를 계기로 다시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했다.
고해성사하듯 외친 창희도 말을 끝내고 구씨에게 지난밤 불쑥 찾아든 무례를 사과하러 간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개새끼들도 시작점은 다 그런 눈빛.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을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진짜 감탄한 미정이의 대사.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를 한 줄로 요약해놨다.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혹시 내가 추앙해줄까요? 그쪽도 채워진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필요하면 말해요.”
구씨는 자신에게 추앙을 하라는 염미정에게 "미안하다, 나도 개새끼라서. 너는? 넌 누구 채워준 적 있어?" 라고 답했었다. 구씨의 말과 창희의 말에 생각이 많아진 미정. 미정은 어떤 회사 동아리에도 소속되고 싶어하지 않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해방클럽'을 만든다. 속 시원한게 하나도 없다고.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갑갑해서 해방하고 싶다고. 해방클럽을 만들고나서 미정은 조금 변화해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밀어본다. 바로 이름도 모르는 구씨에게.
4화 명대사
이상하게 마주 보고 앉는 게 불편하더라고.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는 게 뭔가 전투적인 느낌이야. 공백 없이 말해야 된다는 것도 그렇고. 어딜 가나 속 터지는 인간들은 있을 거고, 그 인간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고, 그럼 내가 바뀌어야 되는데 나의 이 분노를 놓고 싶지 않아. 나의 분노는 너무 정당해. 이 분노를 매번 꾹 눌러야 되는 게 고역이야.
박상민 대사. 와, 이렇게 서로 안 보고 앞만 보고 앉을 수 있는 모임있으면 MBTI 인프피(INFP)인 저도 참석하고 싶은데요? 나도 사람들을 마주 앉아서 볼 때 미묘하게 불편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은 느낌. 내향형 사람들 꿰뚫어보는 대사 아닙니까 이거,,,
“긴 세월을 아무 계획도 없이 살 거야?”
“애들한테 꿈이 뭐냐고 묻는 게 제일 싫어. 꿈이 어디 있어? 수능 점수에 맞춰 사는 거지. 수능이 320점인데 그거 갖고 뭐 의대를 갈거야? 뭐 할 거야?.”
“아무 계획이 없이 사니까 그런 거 아니야!”
“아버지는 인생을 계획한 대로 사셨습니까!”
창희는 꿈을 묻고, 계획을 묻는게 짜증이 난다. 아버지 본인도 빚 보증 서서 한 평생 일하게 될 것을 계획하지 않았으면서, 왜 나보고는 계획을 하래? 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데 무슨 수로 미래를. 계획은 결국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는 건, 본인의 욕망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창희는 아닌척 하지만 사실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씨 형처럼 에어컨 맘컷 트는 집에서 혼자 살고 싶고, 차도 갖고 싶지만 지금의 본인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계획하는 것은 내 욕망과 괴리가 먼 현실을 마주하는 일이니 여유가 없는 자들에게는 어쩌면 짜증나고 비참한 기분을 견뎌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창희는 소리친다.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되어 있는거?”
“확실해.”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미정이 생각하는 추앙의 뜻. 구씨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얻은 추진력으로 붕, 하고 날아 멀리 떨어진 염미정의 모자를 주워 준다. 구씨는 그렇게 미정을 추앙하기로 했다.
우리에게도 추앙이 필요하다. 이래라저래라 관여하고, 그러다 편갈라서 싸우고, 서로 혐오하고 멸시하는 것 말고. 해방클럽의 멤버들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추앙은 가능하다. 어쩔 때는 조건 없이 구씨처럼 온 힘을 다해 추앙해볼 수도 있겠다. 차가운 눈빛을 주고 받다 결국 모두가 외로워지기 전에 서로 응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조금의 따스함이라도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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