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챌린지가 알려준 것 : 가볍게 지금 시작하기
저는 이상한 완벽주의가 있습니다.
결과물이 제 마음에 들 것 같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아요.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달리기 시합이 있는 날, '어차피 꼴등인데 왜 뛰어?'
전 비겁하게 뛰지도 않았으면서 속상하긴 해서 울어버렸습니다.
미술 시간에는, 완벽히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거듭 색칠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 저는 너무 어려 손이 서툴렀고 아는 것도 하나 없었죠.
그런 상태에서 덧칠이 심해지니 결국 난해하고 괴상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완벽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완벽주의가 제 속을 태우고 작품을 망쳐버린 거죠.
나의 이상과 먼 현실에 속상해서 또 울었습니다.
사람이 다 잘할 순 없고 완벽할 수는 없는데.
어린 저는 욕심도 참 많았고 겁도 참 많았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어릴 때처럼 울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성향이 내재되어 있어요.
성인이 된 지금은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실패가 두려워서 미뤘다가 벼락치기를 해버리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글을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보통 어떤 주제가 떠오르거나,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생길 때
글을 쓰는 편인데 그것도 한 달에 한 번 쓸까말까입니다.
왜냐하면 어렵지 않은 주제임에도 정보를 수집하고
글을 썼다 지우고 다듬다 보면 한 두시간이 훌쩍 넘어버리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매일 매일 쓰기가 버거운 것이죠.
누군가가 제 포스팅을 보면 1~2시간까지 걸릴만한 내용도 아니고 그렇게 공들인 것 치고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완벽주의라고 표현해봤습니다.
전혀 완벽함에 가깝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내 나름의 기준에 맞게 해보겠다고 애쓰기는 오지게 애쓰고 있으니..
오블완 챌린지는 그런 저에게 얘기합니다.
'일단 뭐든 써서 올려!'
일을 마치고 밥 먹고 씻으면 9시,
좀 쉬다가 10시나 10시 반 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저는 블로그에 주로 정보성 글을 올리는데,
포스팅을 매일매일 하려니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소재가 떨어져 제 일상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12시까지의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아주 급하게 엉망진창으로 써내려 갑니다.
그렇게 12시 전으로 제출된 글은 역시 중구난방이고, 심지어 마무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12시를 넘겨서 수정을 하다 보면 1시가 되고 그땐 사실상 졸면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정해봤자 거기서 거기죠ㅎ.ㅎ
그래도 이렇게까지의 최악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민망하다고 생각하며 감겨오는 눈꺼풀을 치켜떠봅니다. 대체 오블완이 뭐길래;
잠을 줄여가고 아침에 피곤해 하면서까지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게 웃기지만 이왕 시작하고 지켜온 거 뭐 하나 제대로 끝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일어나 밤새 엉망진창으로 쓴 게시글들을 다시 봅니다.
이게 맞나 싶고 어이가 없어요.
그리고 제 일상이나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건
남들에게 내 TMI가 가득 담긴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 부끄럽기도 합니다.
참 피곤한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왜일까요.
오블완 챌린지는 나에게 일단 뭐든 시작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한 완벽주의에 갇혀 있는 제게 필요한 것이에요.
멀리 있는 저 이상과 알 수 없는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땅 밟고 서 있는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행하게끔 해요.
그리고 별 거 아닌 일상과 생각의 기록이지만 원래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법 한 것들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면서 제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제 자신을 알게 되네요.
내가 오늘 이런 감사한 일들이 있었구나,
이런 일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끼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마음의 불안이 조금은 잦아들어갑니다.
일상 얘기를 쓰더라도 꼭 정보를 집어넣으려고 애썼었어요.
'내 블로그는 누군가에게 꼭 쓸모가 있어야 돼!'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일단 아무렇게나 써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늘 준비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제 틀과 기준을 깼을 때 이 엉성함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MBC예능 <나 혼자 산다>의 전현무님이 자신의 날 것을 보여주며 대중들에게 더 큰 호감과 인기를 얻은 것처럼
마음을 내려 놓고 한 것들이 오히려 좋아~ 오히려 잘 됐어~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쥐뿔도 없는 걸 인정하고
겉 보이기에 좋으려고 애쓰지 말고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좀 쪽팔려도 두려워 하지 말자.
일단 시작하고! 앞으로 한번 나아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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