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요즘 인터넷 게시글이나 SNS에서 교묘하게 책을 홍보한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늘어놓다가 마지막엔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로 귀결된다.
흥미롭게 읽다가도 '에이, 뭐야? 홍보글이었네!' 하고 김빠진 채 게시글을 넘겨버린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도 위의 방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보통은 넘겨버렸을 텐데, 언뜻 읽은 내용이 너무도 내 이야기 같아 결국 ebook으로 사서 읽게 되었다.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추천 대상
이 책은 매우 예민한 사람들(HSP, Highly Sensitive Person)이 주인공이다.
책의 첫 장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테스트가 나오는데, 나는 전부 해당이 되었다.
(테스트 문항을 보면서 현대인이라면 HSP가 꽤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기질 덕에 여러 위협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조상들의 후손이 지금의 현대인들일테니.)
저자가 얘기하는 HSP의 특성은 세 가지이다.
1. 초감각 - 태어날 때부터 신경계의 민감도가 높음.
2. 초감정 - 타인의 감정 상태를 매우 잘 인지하고 크게 영향 받음. 눈치가 빠름.
3. 심미안 - 심미적인 예민함이 있음. 음악, 그림, 영화, 책 등을 감상하거나 창작하는 과정에서 깊은 수준의 영감을 느낌.
이 특성을 보고 내 어린 시절과 현재를 떠올려보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린 나는 걸핏하면 울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낯선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높았고, 수줍음이 많았다.
고통에 대한 겁이 많아 놀이터를 가도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HSP의 특성 중 제일 공감이 되는 부분은 초감정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감정이 잘 느껴져 나도 그 감정에 동화되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남의 감정까지 내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거리를 두는 법도 알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로 비롯된 불편함을 막고자 웬만하면 갈등없이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며,
신경쓰고 싶지 않을 땐 거리를 두고 눈치 없는 척, 모른 척하기도 한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푸는 나만의 방법은 늘 문화예술 활동이었다.
미술과 음악, 독서를 사랑해서 늘 독서, 영상, 그림, 연극 등 문화예술 주제의 동아리에서 쭉 활동해왔다.
이러한 취미가 내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었다. 그래서 어릴 적 내 꿈은 작가나 PD였고
지금 근무하는 곳도 문화예술과 밀접한 곳이다. 이러한 성격과 취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와 비슷한 성격과 취향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내가 가진 '예민함'의 기질적 특성과 이로 비롯된 문제들의 원인을 파악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인생을 헤쳐나갈 것인지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들이 많아 장마다 읽고 느낀 것들을 아래에 작성해본다.
1장. 남들은 내가 예민하다는 걸 모른다.
1장의 목차 중 가장 공감이 되었던 소제목은 '예민한 사람이 반드시 은혜를 되갚는 이유' 였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으면 고맙고 기쁘면서 나 역시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나 이런 마음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은 예외다 . . . )
사람이 누군가에게 베풀면 상대에 대한 기대심리가 어느정도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게 애쓰고, 신뢰 관계를 쌓으려 한다. 내가 상대를 정말 좋아해서
마음에 우러나와 해주는 경우도 있고, 빚진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도 있다.
책에 따르면 HSP는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감정을 느끼는 수준이 깊다보니
작은 잘못에도 죄책감을 강렬하게 느낀다고 한다.
죄책감이 주는 불쾌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들이 공감되었고
그제서야 내 마음과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 사소한 실수에도 곱씹어 자책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싫은 말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
- 누군가에게 호의에 빨리 보답하고 싶어한다.
- 남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른 사람의 부탁은 잘 들어준다.
- 조원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조별 과제를 열심히 함. (개인 과제는 압박감이 덜해 노력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
- 갈등으로 비롯된 에너지 소모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을 맞춰주며 조용히 지냄. 생존을 위한 회피 선택. ('괜히 일 키우지 말자.', '나만 참으면 돼', '모두가 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또 흥미로웠던 소제목은 '예민한 사람이 무던해 보이는 이유' 였다.
우리는 보통 '예민하다' 라고 하면 밖으로 표출되는 행동들을 떠올리는데
책에서는 예민한 행동과 예민한 감각은 구분된다고 언급한다.
나도 '예민하다'의 정의를 '행동'에 좀 더 초점을 뒀기에 남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내가 무던하고 둥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누가 봐도 예민성을 표출하는 성격은 낮은 우호성, 나르시시즘, 고 개방성(세상에 대한 열린 감각),
고 신경성(스트레스에 대한 낮은 역치)의 성향을 추가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예민한 '감각'을 가진 HSP는 감정 과몰입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면 오히려 말을 더 아끼게 된다고 한다.
남들은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더라도 HSP는 감정적으로 크게 격앙되고,
나의 괴로운 마음을 상대방이 알게 됐을 때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되기 때문이다.
이 감정을 타인에게 얘기하면 내가 속 좁은 사람이 되거나
상대방이 상처받고 화를 내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거다.
나도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느껴도 입을 꾹 닫고 넘어간 적이 꽤 많다.
그렇기에 남들은 날 봤을 때 포용력이 넓다거나 무감정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불편함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괜히 얘기했다가 더 큰 스트레스가 생길까 두려운 것이다.
2장. 예민한 사람에게 인간관계가 지옥인 이유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칠 만큼 엄격한 기준이 있다고 한다.
내 인생의 모토는 논어의 구절 중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자라는 뜻이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지만, 최대한 남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다.
내가 불편함이 싫듯, 남들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혼자 극복하고 해내려고 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징징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사람들과 엮일수록 불편해질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예민한 사람들은 오히려 극 내향적인 사람들보다도 더 혼자인 상태를 선호하게 됩니다.
-2장 中 "나는 왜 부탁하는 게 어려울까?"
읽으면 읽을 수록 너무 공감이 되었다. 남들에게 최대한 일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리고 전 연인이 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대지 않아서 서운해했던 게 떠올랐다.
그러다 가끔 내가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엄청 기뻐했던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이토록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 오래 사귀었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불편함이 문득 문득 밀려왔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족과 같이 사는 집에서도 그렇다. 격하게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금 하는 일도 어느 정도 독립성이 보장되어서 지원했다. )
'실은 나랑 잘 맞지 않는데 내가 이성을 많이 못 만나봐서 그런가?'
'누군가를 더 만나보면 알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사람은 잘 맞춰주고 안정적인 성향의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내 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누구든 누군가와의 결혼을 생각하면 거부감이 들었으니까.
왜 결혼에 거부감이 드는지 상대가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내 환경적인 요인만 떠올렸는데
책 2장 소제목 '결혼,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부분을 읽으면서
내 예민한 기질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과 육아는 타인과 계속해서 부딪히며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스트레스 요인을 최대한 피하고자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극한의 도전, 고통이 아닐까...
결혼과 육아는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예민한 모습을 드러내게 할 것이며
제일 가까운 사람과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빚진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그로 인해 지금 가지고 있는 여유를 모두 잃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 두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거나 육아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책임과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을 찾으며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또 최적의 방법을 찾으려 발버둥 치며 살아가겠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면 스트레스 요인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언제나 나에겐 '마음이 편안한 것'이 제일 1순위이고 그것이 나의 행복이므로.
3장. 불필요한 인풋을 차단하면서 나를 지키는 법
소제목들이 나를 관찰하고 쓴 것만 같아 뜨끔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한 이유'
'나는 왜 할 일을 자꾸 미루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운전하는게 싫을까?'
등. . .
내가 늘 스스로 답답해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유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나와 같이 예민한 기질을 가진 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방향을 제시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아하 모먼트(A-ha moment)'를 느꼈다.
인간에게는 인지적 종결 욕구라는 본능이 있는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그것이 해소 될 때까지 상당한 내적 불편함을 겪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파악되고 이해되면 우리의 뇌가 방황하지 않고
고민들을 깔끔히 종결짓는 순간을 아하 모먼트라고 부른다.
책을 통해 내 자신을 이해하고, 또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다.
덜 불안하고 우울하며, 내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장의 제목은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5장의 제목은 '이제는 내가 나의 편이 되어야 할 때' 이다.
어렸을 때는 나를 다스리는 일이 서툴렀다면
그래도 여러 책도 읽고, 경험도 하고, 나이가 드니 조금 더 수월한 것 같다.
예민한 사람들의 생존법을 읽으며 반가운 구절들도 보였다.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예민한 나를 다스리기 위한 습관이 있다.
밤에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폼롤러 스트레칭을 꼭 해준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향의 제품을 쓰거나 웃을 수 있는 영상들을 찾아본다.
그리고 마음이 안 좋은 날에는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예민한 사람들이 본인의 기질과 순한 곰 페르소나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 괴리감을 좁혀나가면서 편안함에 더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는 책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문화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소개서 쓰기 막막한 당신께 추천하는 책 (0) | 2024.11.09 |
---|---|
영어 면접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3) | 2024.11.08 |
진로 고민과 불안을 해소해줄 한 권의 책 (2) | 2023.01.05 |
환율 1360원대인 요즘 읽어야 할 경제 입문 책 추천 (0) | 2022.09.04 |
열정에 맞는 진로, 직업 찾기는 위험하다 <열정의 배신> (5) | 2020.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