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역사 살펴보기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하게 된 계기와 역사의 흐름
1. 박정희 정권의 몰락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 정변으로 집권했다.
1963년과 1967년
권력 이양의 약속을 파기하고 선거에 출마하여 재차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경제 개발의 성공으로 지지를 획득했으나
1969년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삼선 개헌의 단행과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유신 헌법의 공포로 정치적 위기 국면을 초래하였다.
1973년 10월
서울대 시위를 계기로 학생과 재야인사 주도의 반유신 운동이 전개되었다.
유신 반대 운동에 직면한 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이를 진압하고자 했다.
시위는 해가 갈수록 확산되어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으나,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개헌을 요구했던 이들은 긴급조치 아래 모조리 구속되었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 미사와 기도회에서 함석헌, 윤보선, 김대중 등 각계 인사들이
긴급 조치 철회와 박정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3.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했으나
정부는 서명에 참가한 재야인사들에게 정부 전복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씌워 대량 구속하였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7762
박정희 코 납작하게 만든 또 하나의 12·1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
www.pressian.com
1978년 12월 12일
제 10대 총선에서는 야당인 신민당이 여당인 공화당을 앞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민심의 이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https://ppss.kr/archives/128691
1979년 YH무역사건, 유신독재의 몰락으로 이어지다
1979년 8월 9일,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와이에이치(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폐업조치에 항의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노동자 187명은 도시산업선교회의 알선으로 당사에 들어갔고, 당
ppss.kr
1979년 8월
YH무역의 일방적인 폐업공고로 생존을 위협받은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정상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다시 8월 6일, 일방적인 폐업공고를 발표했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도움을 얻기 위해 신민당 당사로 모여 들었고,
신민당과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정부와 여당, 경찰은 이들에게 압박을 가하다 결국 8월 11일,
1천여 명의 경찰이 소방차, 사다리차, 물탱크차 등을 동원하여 신민당 당사로 진입했다.
여성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김영삼 총재, 국회의원, 기자 등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농성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대의원인 '김경숙'이라는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는 'YH 무역 사건'이 발생하였다.
1979년 10월 4일
YH무역 사건을 계기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정부와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후 김영삼의 가택 연금과 의원직이 박탈되자, 이것이 민심을 격화시켜
부산, 마산 지역의 대규모 시위(부마민주항쟁)을 촉발시켰다.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142
文 대통령, "부마항쟁은 민주주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 - CIVIC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www.civicnews.com
1979년 10월 16일 부산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부산대의 한 학생이 강의실에서 선언문을 나눠주며 학생들에게 거리로 나가 독재와 맞서 싸우자고 외쳤다.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와 열악한 노동 문제로 쌓였던 대학생들의 분노가 터져나왔다. 이에 직장인과 고등학생을 비롯한 부산의 시민들이 합류했고, 시위는 가까운 마산으로도 번졌다.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시위를 목격한 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은 민심을 파악해야 한다며 온건 대응을 제안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은 강경 대응을 밀어부쳤다.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9007?no=139007
부산에서 분노 폭발했는데 잔치 벌인 청와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m.pressian.com
1979년 10월 18일 0시
정부는 부산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를 강경 진압하였다.
그동안 권력 다툼으로 계속해서 갈등을 겪은 김재규와 차지철은 부마항쟁 진압을 놓고도 대립했다.
1979년 10월 26일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 후 궁정동 안가에서 정치인들이 연회를 가지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19년간의 독재 정권이 막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죽음에 나라는 혼란스러워졌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단독 입후보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 신군부(전두환 등)의 등장
1979년 12월 12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짓밟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3. 시위의 전국적 확산
1980년 서울의 봄
서울역과 시청 앞 광장에 모인 10만 여명의 시민들이 외쳤다.
'신군부는 물러가라.' '계엄령을 해제하라' '민주주의를 쟁취하자'
http://www.518.org/sub.php?PID=0101
5·18기념재단 > 5·18민주화운동 > 5·18민주화운동 > 기억해야 할 5·18민주화운동
경찰병력이 시위군중에 밀리기 시작하자 금남로에 재투입된 계엄군이 양손에 진압봉을 받쳐들고 시위군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www.518.org
1980년 5월 18일 전라도 광주 민주화 운동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에 반발해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가 투입되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작전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쓰러졌다.
사상자가 급속하게 늘어나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여
공수부대를 향하여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정두환 정권 아래 철저히 검열된 언론에서는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해 일어난 폭동으로 보도했다.
왜곡된 사실을 보도하고 군부의 과잉진압행위 등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분노하여
시민들은 광주 MBC 건물을 방화하는 등 더욱 더 거세게 항의하였다.
5월 21일 오후 1시 정각
전남도청 옥상에서 애국가가 울리자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시민군 역시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고 계엄군에 맞서기 위해 총을 들었으나
시민군은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상대는 훈련받은 군인들이었다.
이날의 총격전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5월 22일 계엄군이 광주에서 외곽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퇴각한 후
22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광주는 시민군의 자치로 운영되었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철수한 5일 동안 부족한 식량과 생필품을 나누고,
부상자를 함께 간호하고, 주변의 이웃들을 도왔다.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계엄군은 시민을 폭도로 내몰았다.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계엄군은 총기 반납을 요구했다.
5월 27일 새벽
협상이 결렬되자 계엄군은 2만 5000여명의 군인과 탱크를 동원해
무력으로 광주 시민을 진압하고 도청과 시내를 탈환했다.
이로써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9일간의 치열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은 무력 진압으로 끝을 맺게 된다.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은 8년이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규명될 수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봄은 그렇게 끝났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당시 희생당한 가족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행방불명된 가족의 생사라도 듣기 위해 백방으로 헤매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을 도와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40주년을 맞이한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여
희생자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감사해 하는 오늘을 보낼 수 있길...
'정보 > 최근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6월 21일 부분일식 지역별 시간 / 보는 방법 / 라이브 (2) | 2020.06.21 |
---|---|
1.5TB 412억건 정보 유출... 전 국민 금융·개인 정보 털렸다 (4) | 2020.06.15 |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수단별 특성 비교 및 신청방법 (5) | 2020.05.10 |
신종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 증상, 전염 및 예방 (0) | 2020.01.29 |
2020년 유용한 청년정책 정리 (0) | 2020.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