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대해서 알기 위해 읽은 책들
190501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소년들의 비행을 다룬 두 책을 빌렸다. 하나는 저자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다른 하나는 저자 천종호의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였다.
전자는 1999년 4월, 13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부상자를 만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쓴 책이고, 후자는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는 짤로 유명한 호통판사 천종호가 자신이 담당했던 소년재판 사례와 그 아이들에 대해 쓴 책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두 책의 공통점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쩌면 이해하기도 싫은 가해자의 내막과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괴롭힘의 악순환에 대해서도.
폭력은 예방할 수 있다
나는 괴롭힘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어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아 아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하면
부모님도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 나를 보시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있고 못생긴 아이로요.
...
딜런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야 해요. 친구나 동지가 옆에 있어줬어야 했는데.
분노와 우울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달래줄 친구요. 이건 아셔야 해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되어줄 수 없다는 걸요. 형 바이런도 마찬가지고요.
성장과 분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감추어왔던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털어놓기는 극히 힘듭니다...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中 신디 워스의 편지
우리는 보통 교육적이고 좋은 부모 아래서 자라고 집에서는 '햇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따뜻하고 착한 아이, 그리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는 아이가 폭력적인 사건의 가해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이의 내면에 큰 고통이 있을거라는 것도. 하지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의 아들 딜런 클리볼드는 그랬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아이였지만 그는 학생과 선생님을 총으로 쏜 후 자기도 자살한 콜럼바인 고교 총격 사건의 주인공이다.
충격적이었다. 그럴 수가 있나? 저자 수 클리볼드 역시 자기가 알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대부분의 부모는 내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숨기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철저히 숨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십대 때 나 역시 그랬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 친구와의 갈등,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들 등 부모님이 여전히 모르시는 것들도 많다. 부모에게 거절 당하거나 혼날까봐 무서워 속으로만 삭히는게 대부분이다.
위에 신디 워스의 편지 내용처럼 부모는 아이를 다 알 수가 없고, 아이는 커가면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을 거부한다. 부모가 사랑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아이의 전부가 되진 않음을 저자는 깨닫는다. 아이의 나머지 부분은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외의 것들이 크게 차지한다. 친구, 학교, 사회... 그렇기 때문에 부모만 잘하면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학교와 사회가 함께 아이의 변화나 성장을 섬세하게 지켜보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10대의 뇌건강과 관련해서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 구조가 되었을 때 아이들의 탈선과 폭력은 예방할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가 다 같이 키우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더욱 와닿았고, 조금 씁쓸해졌다. 십대의 감정기복과 우울은 단순히 사춘기, 요즘은 '중2병'이라는 말로 치부될 때가 많다. 어른들은 자라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아팠던 기억이 희미해져 아이들의 아픔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가볍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어리다고 아픔이 덜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이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처 할수록 아이들의 삶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어른들의 무관심이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신뢰를 저 버린다
경태가 읍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직속 선배였기 때문에
열 명이나 되는 후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키도 자신들보다 20cm나 더 크고 문신까지 새긴 경태가 두려워서 대항을 못하기도 했지만,
중학교 때 선생님께 경태한테 갈취당한 사실을 알렸는데도 선생님이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자질했다는 이유로 경태한테서 심한 보복성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 어른들에게 이야기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예 저항할 의지조차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中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사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없었던 책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만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었는데, 그 책 옆에 이 책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천종호 판사의 아이들을 향한 애정, 연민, 미안함이 잘 묻어있는 책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별 기대없이 읽었던 책인데 여러 가지 구체적인 소년재판 사례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이 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가해자가 한 짓을 읽을 때는 분노가 일어났다. 하지만 가해자도 가정 폭력의, 혹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연민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탈선을 할 때, 혹은 괴롭힘을 당할 때 모른 척하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어른들을 볼 때는 내가 다 미안하고 참담했다. 천종호 판사가 절대 안 봐준다며 가해자들에게 엄하게 호통을 치면서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할 때는 조금 시원하기도 했고, 가해자들이 사과를 할 때는 저게 진심인지 의심이 되었다. 진심이어서 피해자가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피해자가 살 인생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했다.
천종호 판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소년재판에서 가해자들을 계속 보게 된다면, 그들에게 어느 정도 연민의 감정이 있어도 피해자를 생각하면 교화고 나발이고 이들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들 것 같다. 영원히 벌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천종호 판사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시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는다.
어린 시절, 우리 모두 헤매고 방황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방황할 때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관심, 또는 작은 호의로 방황을 멈추었고 누군가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여전히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른들이, 사회가 아이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어야 함을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저자 같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이 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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